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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부동산투자

동탄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다.

지방근무를 마치고 2005년 1월자로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아 용인 죽전에 전세집을 구해서 회사가 있는 강남으로 출퇴근을 몇달 하다보니 분당선 라인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가격이 요동치는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른바 규제정책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참여정부 시절, 이래서는 집 한채도 구하기기 어렵겠구나 라는 생각이 느껴지는 시기, 분양을 받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2005년 10월 정도였던거 같다. 죽전의 보정역 앞의 공인중개사 사무실 지나가는데 근처의 동원로얄 듀크 아파트가 분양가 보다 1억 5천만원이 넘게 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천지개벽이지!! 피가 분양가 절반이상이나 올랐으니 그때는 도대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분당선 라인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권을 알아보는데 먼저 수지지역을 둘러보게 된다. 신봉자이를 알아보는데 내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다시 상현동, 동천동, 동백지구, 화성 봉담 등도 다녀왔다. 분양가가 저렴한것은 도대체 초자의 눈에도 들어 오지 않았고 주변 인프라가 너무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용인에서는 난개발이라 아파트 주변 인프라는 사실 죽전지구 외에는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것이다.

00지구 역시 택지개발지구였으나 한쪽이 산으로 막혀 있어서 확장성이 약했고 도로망 구성도 단순하여 상시 정체 구간이 발생했었던거 같다.

그러던 중 아마도 분당 이매역 근처였던것 같다. 화성의 동탄이라는 곳에서 신도시가 개발 중인데 거의 마지막 단지를 분양한다는 프랭카드를 보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모델하우스가 오픈되고 아내를 데리고 모델하우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아내 왈 무슨 화성의 아파트를..... 그때까지는 우리부부는 화성이라는곳은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에서 알수 있듯이 딱 그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어서 도무지 청약을 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차에 드디어 결정을 하게 된다. 이것을 청약하지 않으면 우리 이름의 집은 영원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청약을 하게되었다.

그당시에는 동탄 신도시 거의 마지막 분양 아파트 단지인 예당마을 아파트 4개 브랜드와 좀 떨어진 00아파트를 분양중이었고 가지고 있는 청약통장을 활용하여 예당마을의 1개의 아파트와 00아파트에 청약을 신청하였고 그중 청약 발표일이 빠른 예당마을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그당시에는 최근 10년간 무주택자와 5년간 무주택자의 혜택이 있었고 우리는 5년간 무주택자의 혜택으로 청약가점을 받아 당첨이 되었다. 생애 최초 청약 신청을 하였고 그것이 당첨이 되어 나와 아내는 참 기뻐했었던것 같다. 우리도 몇년 후면 드디어 우리집이 생긴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았다.

분양을 받은 것이 2005년 말이었으니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2007년까지 부동산 가격은 우상향으로 계속 달린다. 내가 전세살던 죽전지구의 00아파트 가격이 2005년 3억3천만원에서 2007년에는 5억 8천만원이 되자. 아내는 계속적으로 동탄 시골에 분양받을것이 아니라 전세집을 샀어야 했는데 라고 지속적으로 푸념하곤 했다.

2007년 어느날 부동산에서는 동탄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입주시에는 5억이 넘을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위에 예를 들었던 용인 죽전지구 동원 로얄듀크보다 2005년 프리미엄 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우리가 동탄에 입주하는 해인 2008년도는 2007년까지 부동산 가격 우상향 꼭지를 찍고 내리막으로 달리는 시작 시점이었고 2008년 말에는 2005년 정도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전세
살던 00아파트가 5억 8천만원에서 4억까지 떨어졌으니 2007년말 꼭지를 잡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우스 푸어로 전략하는 시기였다.

그나마 동탄에 분양받은 나는 나의 투자 내공에 스스로 만족하곤 했었고 2008년 11월 드디어 동탄 신도시 예당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